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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와 교지와 억지
蔣 鍾 祿 (본회이사)
●무지(無知)에 대하여
숫제 모르거나 안다 해도 어슴풋이 알거나 되레 거꾸로 아는 것을 모두 무지라 한다. 더 쉬운 말로는 무식이라고도 한다. 요즘 들어 우리주변에는 비전문가가 아예 전문가 행세하며 떵떵거리므로 해서 무지가 덕지덕지 드러나는 꼴불견들이 너무 많이 눈에 띈다.
예를 몇 가지 들어보자.
자동차는 우리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방편이고 늘쌍 부딪치는 기물인데 그 식별을 번호판으로 한다. 말하자면 주민등록증 같은 것이고 명함이나 진배없는 것이다. 번호판은 간판이나 마찬가지로 한눈에 알아보도록 고안되어져야 마땅하다. 얼른 알아보기 힘들거나 헷갈리는 번호판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이 분명하다. 요즘 번호판은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알아보기 힘들뿐만 아니라 가지 수도 대여섯 가지 넘어 뒤섞여 다니니 길거리가 온통 잡탕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왜 그런고 하니 주어진 규격공간에 최대한 글자를 굵고 크게만 하면 잘 보일 거라는 무식이 주도를 하고 결정권을 가지고 시행했기 때문이다. 주어진 공간에 주어진 글자를 멀리서도 얼른 알아보이게 하려면 알맞은 여백을 두고 글자를 배열하는 것이 소위 디자인의 기본인데 이 기본조차 모르는 자들이, 다시 말해 어느 전문가 말로는 디자인의 ‘디’자도 모르는 자들이 주물렀기 때문이란다. 말썽이 나자 글자크기를 살짝 줄여 여백을 조금 살린 개선안이 나왔지만 어쩐 까닭인지 새 시대에 맞게끔 앞으로 획기적으로 새 번호판을 만들겠다는 구실아래 그대로 밀어붙이다가 획기적으로 그 뒤에 나온 것이 더욱 가관인 것이 크기도 각양이고 여백 없이 굵은 글자로 꽉 채우기는 마찬가지여서 더 알아보기가 힘들어졌다.
정권이 바뀌면 번호판도 으레 한차례 바꾸는 것이 상례였다. 두 번씩이나 바꾼 것도 야릇하지만 예전 것이 더 알아보기 낫다는 것이 중론이고 보면 두 번이나 헛돈만 내버리며 누군가 좋은 일 시킨 것이 분명하다. 번호판 장사를 두 번이나 하고 또 불평까지 싸는 것도 무지 때문이 아닌가 한다. 새로 나온 돈은 또 왜 그리 헷갈리는지...... 바쁜 세상에 돈까지 눈을 부릅뜨고 헤아려 보아야할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엄청난 무지의 발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무지의 낌새가 일찌감치 드러났던 일이 있었다. 집권하자말자 차선을 평등화 한다며 대형트럭도 맘대로 1차선을 달릴 수 있게 했었다. 아무 차나 아무 차선을 입맛대로 다니게 한 것이었다. 그러자 고속도로에서 대형 사고들이 줄을 이었다. 여론이 비등하자 석 달도 안돼서 차선 평등화를 취소는 못하고 수정을 해서 1톤 미만 트럭과 승합차는 그래도 1차선을 갈 수 있다고 조정을 했었다.
차선이란 고급차가 신나게 1차선을 가고 그다음이 2차선을 가는 것이 아니라 차의 높이가 엇비슷하고 기동성이 방사(倣似)한 차들끼리 같은 차선을 가도록해서 주행시야를 확보케 하고 안전성을 도모하여 기동성 살리고 도로율 높이기 위한 방편인데, 사물의 겉만 보고 승용차는 가는데 왜 트럭은 못가게 하느냐는 식의 배 아픈 눈으로만 세상을 보았던 것도 무지의 발로가 아니었던가 한다. 기박(奇薄)하게 자랐던 이들은 심성이 비뚤어지기 쉽다던데 그 까닭만은 아니었기를 제발 바라고 싶다.
그뿐인가. 벌건 대낮에도 전조등을 켜도록 강요까지 했었다. 남의 나라에 가서 그러는걸 보았는지 여기가 어딘 줄도 모르고 그대로 흉내 내어 시행하려다 비웃음만 샀다. 저들이 80년대 유학 가서 보고 배운 유럽 국가들은 당시에 사회주의 열병을 앓고 있었고 오늘도 맑은 날 보다는 우중충한 날이 더 많아서 돈 모아 휴가 때 바닷가로 햇볕 한번 쬐러가는 게 소원인 나라들이다. 우리도 비가 좀 올듯해서 시야가 흐려지면 켜지 말래도 미등이나 전조등을 내낮에도 자발적으로 켠다. 허구한 날 햇볕 쨍한 이 금수강산에서 우리는 대낮에 전조등 켜고 설치면 소방차나 구급차인줄로 안다. 아니라 해도 일단은 위협을 느끼게끔 정서가 되어있다. 이 또한 무지로 인한 시행착오의 단례이다. 한 시대 전에 사회주의 개혁의 열풍에 들떴던 나라에 갔을 때 보고 배운 것 그대로를 세계 12대 교역국이 되어있는 오늘 이 나라에다 시행하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시대착오라는 것을 못깨닫는 그 자체가 바로 무지인 것이다.
그들이 가서 보고 배운 그 개혁의 원조나라 불란서의 철학자 앙드레 글뤼크스만은 ‘혁명이란 일반적으로 외부의 적에 대한 투쟁의 구실아래 실제로는 내부의 적에 대한 탄압이라는 형태로 계속 된다’고 사회주의혁명을 비판하고 ‘식민제국주의에 대한 해방 투쟁의 구실아래 인민에 대한 억압을 일상으로 일삼는다’고 했다. 반제․민족․자주라는 기치아래 세습독재 권력을 지탱하고 있는 북한이 지척인데도 낭만적 사회주의자들처럼 꿈같은 일들만 벌이고 있다.
제 발은 두고 앉아서 남의 발에 버선 신기고 있는, 제 발 가려운데 남의 발 긁고 있는 짓거리만 하니 이건 도무지 무지 탓인지 고의(故意)인지 애매하기까지 하다. 고의라면 일단은 난신적자(亂臣賊者)들인 셈이다.
지금 권력을 사물인양 천횡(擅橫)하며 기맥(奇脈)이 통하기만 하면 견양지질자(犬羊之質者)라도 아무나 장관 주고 아무나 일세구천(一世九遷) 예사로 시키는 것도 무지의 극이 아닌가 한다. 원(元)나라의 명신 장양호(張養浩)는 장관은 아무나 하는 것이 절대 아니라며 ‘지위는 얻기가 쉬워도 명절(名節)은 지키기 어렵다. 지위란 잃었다가도 되찾을 수 있지만 명절만은 한번 잃으면 끝내 돌아오지 않는다’고 경고 했었다. 갖추었던 명절도 장관이 되면 지키기가 어렵거늘 아예 명절 근방에도 닿지 못한 자들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감투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작태도 무지 탓이 아닌가 싶다.
또 얼마전 일인데 어느 신문 칼럼에서 최고 권력자를 ‘계륵’(鷄肋)에 빗댔다고 공식적으로 발끈해서 논란이 있었다.
어디 함부로 지엄한 이를 닭뼈라니....! 계륵의 고사도 못읽어 봤고 문장의 비유법도 모른다는, 무식이 탄로 나서 끝나고 말았지만 정말 웃고 지나갈 일이 아니었다.
요즘 한창 논란이 일고 있는「언론과의 전쟁」도 어찌 보면 무지의 한 발로가 아닌가 한다. 저들이 한 입 모아 욕하는 군사정권 말기에도 언론중재신청이 8건이었고 자칭 문민정부 때도 27건이었는데, 이 정부는 현재 118건이라니 미숙(未熟)도 유만부동이라 하겠다. 무지와 미숙은 원래 유유상종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자과부지(自過不知)라고 제 허물은 제가 모른다 했다. 남(言論)이 꼬집어 주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고맙게 여길 줄 아는 도량쯤은 있어야 높은 자리에 앉을 그릇이 된다. 전쟁 상대 언론에서 제 편으로 삶아놓은 전파매체는 쏙 빼놓은 것은 또 무슨 꿍꿍이 속인가?
제 편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초장에 덩달아 한편이 되어 세상 바꾸겠다고 지악스럽게 짖어대며 어느 시절 어느 나라의 홍위병처럼 날뛰던 무리들도 봄볕 든 토방(土房)의 개팔자가 되었는지 잠잠해졌다. 저들이 잠잠해서 그런지 예전 같으면 열 번도 더 데모하고도 남았을 일들이 터지고 또 터지는데도 아예 「데」자도 들먹거리지 않는다.
어쨌거나 세상이 소란하질 않게 되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스스로 무지를 깨닫게 되어서 그렇다면 더욱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몇몇 철 덜든 자들이 철 들어가는 시행착오의 과정에 우리 모두가 함께 시달리고 나라도 결단 나가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참말 걱정스럽다.
●교지(狡知)에 대하여
사리사욕을 채우려거나 어떤 사악한 목적을 이루고자 교활한 지혜를 짜내어 실천하는 자를 교지자(狡知者)라 한다. 교지자가 다수인 대표 집단이 정치권이지 싶다. 그들은 누리치근한 냄새를 늘 풍기지만 득세하고 있는 당시에는 딱히 집히는데 없이 늘쌍 으스대고 다니는 자들이다. 권세를 잃거나 죽거나하면 썩었던 구석이 드러나 구린내가 등천하는 자들이다. 뇌성벽력 치는 오밤중에 내심으로 두렵지 않은 정치인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지금도 평생을 술수와 교언을 일삼으며 사이비종교 수법으로 특정지역의 몰표를 몰고 다니는 어떤 이는 노추(老醜)가 질질한데도 전성기에 써먹어서 효과를 단단히 보았던 수법을 재탕하려는 낌새를 보이고 있다.
그의 직전 작품으로는 정권 재창출을 위하여 엉뚱한 대타자(代打者)를 내보내 사람들을 혼란시켜놓고 경쟁자는 모함하여 먹칠시키고 월드컵으로 인기가 충천하던 어느 기업인을 꼬드겨 가세시켜서 판별력이 좀 모자라는 이들의 표를 싹 쓸어가서 목적을 달성한 그야말로 빅 이벤트가 있었다. 대의를 위하고 나라를 잘되도록 하려고 사심 없이 그랬다면 누가 시비하겠는가. 갖은 구실아래 나라의 돈이 되는 것은 거의 다 남의 나라 손에 헐값으로 넘기면서 재미 좀 보았을 것이고, 벤처 육성한다며 공적자금 쏟아 부었다가 증발시킨 국고도 기십조(幾十兆)이다. 첫 번째 가는 큰 기업을 농락하여 반신불수로 쪼개놓고 두 번째 가는 큰 기업을 공중분해 시켜 임자를 바꾸는 과정에서 내막이 심상찮다고들 한다.
그래도 아직 시비는커녕 모두 유구무언이니 야릇하지 않은가.
아무리 멍청하다지만 제 회사 정문 앞에 와서 재벌을 해체해서 주식을 노동자 여러분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겠다고 선동했던 사람과 손잡고 정치를 하겠다고 나섰던 사람도 제 깐에는 꿍꿍이속의 교지가 따로 있었을 터였다. 교지나 기모(奇謀)는 일시적 방편으로만 써먹어도 뒷탈이 거나한 법인데, 아예 목적을 위해 시도 때도 없이 써먹고 있으니 과연 그 뒤끝이 어찌될까 걱정스럽다.
민주주의라는 제도는 좋은 점이 더 많지만 결정적으로 중우정치(衆愚政治)라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선동을 하거나 거짓으로 꼬드기거나 눈속임을 하거나 해서 다수(多數)만 한때 확보하면 되므로 해서 교지자들이 기승을 부려도 통할 수 있는 신기한 제도이다.
민주를 노래의 후렴처럼 입에 달고 다니며 고속도로 닦는 것은 국토훼손이라며 반대하고 포항제철은 사상누각이라며 헐뜯기만 하다가 세상이 뒤집히자 그 틈에 권력을 거머쥐었던 어떤 이는 민주의 민자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었다. 민주란 한마디로 법치(法治)를 말하는 것이다. 법을 엿가락처럼 제멋대로 늘였다 줄였다 하면서 제왕처럼 자신이 법 행세를 하려 들었었다. 권력을 마치 전리품인 것처럼 능력도 없는 저들 패거리들이 나누어 가지다시피 하다가 나라를 거들내고 말았었다. 그다음의 어떤 이도 민주장사 동업을 하다가 대운을 이어서 탔다. 더 큰 세계적 영예를 죽기 전에 얻어 보려고 온갖 교언을 영색하고 협박 수작하여 목적은 이루었으나 세간의 박수는 별로 받은바 없었다.
자고로 축수자목불견태산(逐獸者目不見太山)이라고 짐승을 쫓는 자의 눈은 태산을 못본다고 했다.
사심을 채우기 위해 표만 노리고 온갖 꼼수에만 열중하는 사람은 태산을 보려는 기국(器局)도 아예 없거니와 볼 생각조차 없었다는 것을 인간의 오랜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교언영색하며 한때 충욕(充慾)한다 치자. 그래서 축재하여두고 자손대대로 잘 살 것만 같지만 절대 그렇지가 않다. 겉으로는 잘살아 보이지만 그 업보가 안으로 곪아서 어느 구석에선가 불행의 싹으로 터져 나오게 되어있다.
역사적으로 대표적인 교지자는 진(秦)나라의 여불위(呂不偉)가 아닌가 한다. 자기 자식을 임신 중인 애첩을 왕손에게 바쳐서 그 자식이 나중에 새 왕이 진작 죽자(죽였는지도 모름-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경쟁자를 죽이려든 일이 있었으므로) 왕위를 이어 받도록 했는데, 바로 진시황이었다. 자기는 중부(仲父)로 공경 받으면서 모태후(진시황의 모후요 자기의 애첩)에게는 음경이 큰「노애」라는 종을 붙여주고 음란을 조장하여 그들 사이에도 아들이 둘이나 나게 했다. 그런데도 문신후(文信候)에 봉해지고 하인과 종이 1만 명이 넘도록 호사를 했다. 겉으로는 천하의 선비들을 식객으로 삼고 덕망이 자자했다.
끝내는 들통이 나서 독주를 스스로 마시고 죽었지만, 교지자가 세상의 눈을 가리면 대단한 현자(賢者)로 행세할 수 있다는 증례를 남겼다.
이처럼 한때 세상을 온통 속이고 넘어가는 사례는 일상생활주변에서도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
가령 예전에 민물장어는 g당 값으로는 육류와 생선류를 통틀어 가장 비싼 고기였었다. 한여름부터 한가을까지 주로 바다 가까운 강에서 잡혀 고아서 마시면 병후 회복에나 보약으로 으뜸이었다. 보신탕보다 효험이 커서 비싸고도 귀했는데, 언젠가부터 도처에 사철 영업하는 민물장어집이 생겨났었다. 값은 예전의 비싼 값 그대로 받는데 맛이 영 달랐다. 알고 보니 싸구려 수입양식 장어였던 것이다. 원가는 싸고 값은 고가 그대로 받으니 이문이 엄청나서 우후죽순으로 장어집들이 생겨났던 기억이 새롭다. 일부는 이제 국내 양식도 한단다. 지금도 곳곳에서 민물장어가 사철 팔리고 옛 명성을 등에 업고 풍천장어같이 그 일대가 장어집으로 단지화 되어 전국의 관광버스들이 쇄도하고 있는 곳도 있다. 또 하나 유명한 무교동 낙지로 말할 것 같으면 칼로 째는 듯한 매운맛으로 명성을 얻기도 했지만, 예전 우리 서해남부일대에서 잡히던 세발낙지의 싸각싸각 씹히는 별미로 하여 값이 비싸도 인기가 높았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낙지인지 문어인지 구별하기도 어려운 다리 굵고 질긴 수입낙지가 판을 치는데, 값은 예전 그래도 1인분 1만4천원을 당당히 받고 있다. 전국 다른데 낙지볶음 값의 거의 3배에 해당된다. 그래도 줄을 서고 있다.
마르쿠제는 산업사회에서 물질적 욕구가 충족되면 비판적 사고가 거세되어 ‘예’ 또는 ‘오케이’로만 가는 과잉동조형 인간이 양산된다고 했다. 이를 일차원적 인간(一次元的人間)이라고 했다. 민주․산업사회는 이런 일차원적 인간이 득실대어 어떤 관성이 생기면 따지지도 않고 맹목적으로 휩쓸려가는 집단타성이 생긴다고 했다.
무교동 얘기가 나왔으니 마침 그 근처에서 시작하여 한강과는 거꾸로 서에서 동으로 흘러서 한강지류로 들어가는 청계천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원래부터 청계천은 이름과는 걸맞지 않는 생활하수천이었다. 홍수 때 걸핏하면 범람하던 자연천을 세종 때 지류도 만들고 치수를 목적으로 토목공사해서 홍수에 대비도 하고 생활하수도 받아내도록 정비를 해서 근대까지 그대로 내려왔었다. 예전에는 인구도 적었고 생활하수래야 음식찌꺼기나 분뇨 정도였는데, 찌꺼기 남길 음식도 없었거니와 분뇨는 거름으로 쓰기가 바빴기 때문에 청계천에 더러운 물이 흐를 거리가 적어 아낙네들이 나가서 빨래도 하고 그랬었다. 그러던 것이 산업화로 도시가 비대해지고 생활이 근대화되면서 생활하수가 폐수로 쏟아져서 감당을 못하고 복개해서 그 위에 길을 내고 눈감고 말았던 터였다. 서울의 도심에 숨겨져 있던 이 청계천을 복원 한다 길래 정말 유적으로서 복원이 되었으면 좋겠다 싶었지만, 과연 도심을 장기간 마비시키면서 공사가 가능할지 의문이었고 주변 상가의 반대도 만만치가 않았었다. 결국 황급히 2년 만에 장장 6㎞구간의 공사가 끝나 휘황한 조명아래 분수가 분출하고 고기들도 번드치는 계천의 형색을 갖추었다. 임기 내 실적을 올린 당시의 시장은 이 한건으로 차기 대권주자 일순위로 떠올라 무려 50%에 육박하는 여론조사 지지도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이 사람은 토목 출신이라서 그런지 이 재미에 신바람이 나서 내킨 김에 서울~부산을 잇는 대운하를 파겠다며 지금 기고만장하고 있다.
자! 이쯤해서 우리는 좀 더 냉철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진실을 밝혀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내막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작심하고 청계천 구경을 갔었다. 만인이 열광하고 환호하는 실체를 명징(明澄)하게 보고 싶었던 것이다. 논어에도 고을사람들이 모두 좋아해도 잘못된 것이고 모두 싫어해도 잘못된 것이다. 현명한 사람이 이를 좋아하고 몽매한 사람이 이를 싫어함만 같지 못하다고 설파했다. 모두가 다 한결같이 좋다 하니 어찌된 영문일까 궁금했다.
우선 콘크리트로 발려있던 우중충하던 거리에 맑은 물이 흐르는 계천이 생겨났으니 현상개선에 대한 본능적, 감각적 환희는 마땅한 것이었다. 그런데 신형(新型)청계천은 고적복원이라기 보다는 복원을 구실삼아 어떤 이의 야심을 성취하기 위한 실적용으로 단기간에 졸속으로 원형과는 거리가 먼 엉뚱한 모습으로 태어나 있었다. 당초부터 기능이 하수천이었으므로 이제는 거대인구를 포용하고 있는 도심의 엄청난 하수와 우수(雨水)를 유사시에도 받아낼 수 있는 용량을 갖추자면 그만큼 더 깊이 파는 도리 뿐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하천들은 하수와 우수가 함께 흘러드는 합류식 배관인 땅밑 도랑을 통해 물을 받아내게 되어있어서 호우가 오거나 장마 때 강우량이 넘치면 종말하수관의 용량이 넘쳐서 하수와 우수가 범벅이 되어 그야말로 탁류가 패연(沛然)하는 하천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일거에 식생(植生)과 물고기가 죽거나 위기에 처하고 그 신속한 복원에 정력과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게끔 되어있다. 그래도 비가 많이 쏟아지는 날보다 빤빤한 날이 훨씬 많아서 탁류가 흐르는 날 보다 청류가 흐르는 날이 많으므로 어쨌거나 심신에 유익한 공간으로서의 기능이 크다 하지 않을 수 없겠다. 그러나 지금의 청계천은 그런 기능은 충분하겠지만 복원된 청계천이기 보다는 새로 만든 청계천이라 보는 것이 옳았다. 군데군데 유적의 자취를 덧대놓기는 했지만 시늉에 지나지 않았다.
당초부터 유적복원이라는 목표가 뚜렷하고 사명감이 있었다면 양안(兩岸)을 콘크리트 옹벽을 성벽같이 세워놓고 평균두께 7~8㎝규격으로 사각형 돌을 깎아서 큰 타일처럼 붙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혹자는 짧은 기간에 그게 어디냐고 칭찬하지만 유적복원은 원래 짧은 기간에 하려 들어서는 안되는 것인줄 모르고서 하는 말이다. 문제는 청계천이라는 굿보다는 인기라는 잿밥에 눈이 어두워 그리 되었던 것 같았다. 들머리인 태평로에서 청계2가까지는 그래도 짜임 짜임새가 좀 나았는데(이 구간이 주 관광코스이다), 그 너머부터는 갈수록 소홀한 흔적이 늘려있었다. 도대체 축담같이 쌓는 공법도 틈새를 메워가면서 쌓거늘 하물며 갖다 붙이는 속성공법을 쓰고도 틈새가 거의 메워져 있지 않았다. 심지어 돌조각이나 너트 같은 기물을 두서넛 끼워놓고 윗돌판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아놓고 밑돌판을 갖다 붙인 꼬락서니가 거의 전 구간에 노출되어 있었다.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안보이니까 그래도 괜찮다고 여겼던 것 같다. 대충 보면 큰 타일 마냥으로 돌판이 가지런히 붙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욱 잘못 보면 돌을 쌓은 것처럼도 보인다. 분명 교지의 극찬감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임기 내 서둘러 준공하느라 당초에 옹벽상단 도로가에 묻어서 넝쿨같은 것을 심어 눈가림 하려했던 한 뼘 폭에 한 뼘 깊이 밖에 안되는 기름한 플라스틱 화분은 얼토당토않았던지 최근 와서 시멘트로 테두리를 한 작은 화단으로 바뀌어 있었다. 물론 말로는 2013년까지 장기계획으로 보완한다지만 한건주의가 낳은 자식이 달라져야 얼마나 더 달라지겠는가. 옹벽중턱에 상처 딱지처럼 드문드문 나있는 우수토실(雨水吐室)에선 마른 날이 오래인데도 꺼먼 하수가 배어나오는 곳도 간혹 있고 다리나 옹벽화단에서 물이 바닥으로 떨어져 고인 곳도 벌써 생겨나고 있었다. 가서 밝은 눈으로 좌고우면(左顧右眄)해보면 욕교반졸(欲巧反拙)의 흔적이 덕지덕지하고 부화(浮華)의 냄새가 물씬거림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세월이 더 걸리고 비용이 더 커지고 불편을 더 참기 어려웠어도 고졸(古拙)하게 돌로 쌓아서 유적의 면모를 비슷이라도 살렸더라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근본 뜻이 유적에 있지 아니하고 실적에 있었다는 것이 곳곳에 드러나 있었다.
자고로 교지자는 정도(正道)보다는 편법을 장기로 삼는다했다. 가령 공사반대 시위가 극렬하다고 해서 정도를 벗어나는 타협은 해서는 안되는 법인데, 청계천과는 역사적으로 직접 연관이 없고 시민의 합의도 없는 한 인물의 상반신 조상(彫像)을 큼직하게 청계천의 한 다리위에 세워놓았다. 그래서 반대가 무마는 되었는지 몰라도 그의 동상을 도심 한복판에 세울 것을 목적으로 반대를 더 극렬하게 부추긴 세력에게 굴복했거나 동조했던 결과가 아닌지 모르겠다. 70년대 초의 열악했던 노동환경에 항의하여 청춘을 분신하므로 해서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긴 하지만, 당초 그의 분신도 순수한 노동운동에서 비롯된 것이었는데 사심 가득찬 어느 정치꾼이 가명으로 위장취업해 들어가서 정치투쟁으로 탈바꿈시키고 극렬시위의 표본으로 낙인찍히게 만들었었다. 이 모두 교지자들이 들어서 본질을 흐려놓은 사례가 아닌가 한다.
누구 말마따나 이렇게 해서 재미 좀 본 다음 더 큰 재미를 노리고 내친김에 경부운하라니! 경부운하를 그런 졸속수법으로 만들 것이라고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칠 일이다. 그 재앙이 어떠할지 상상만 해도 끔직하다. 청계천이야 지진이라도 나서 겉붙인 돌판이나 흘러내리면 그만이겠지만, 산을 뚫고 강을 파서 컨테이너선이 지나다니는 운하를 만들겠다니 자연의 위력을 깔보아도 너무 깔보는 것이 아닌가. 그야말로 토목적인 단세포발상이 아닐 수 없다. 내륙운하는 해운이나 육운이 변변찮은 내륙 평면지형에나 걸맞는 발상일 것이다.
운하란 원래는 대륙을 우회하는 항로로 인하여 시간과 비용이 막중한 지역에서 적정지형을 운하로 소통시켜 비용·시간을 절감하기 위하여 나온 발상이었다.
내륙운하는 대체로 소용이 희소하여 선호되질 않았다. 우리나라같이 삼면이 바다로 싸여 해운이 원만하고 내륙의 도로망이 거미줄 같고 땅 폭이 좁고 짧아 항만에서 도처로 얼마든지 하루만에 물류가 가능한 나라에서 유례도 없는 산맥 뚫고 강을 파는 5단계 운하라니?
당도리나 야거리 정도나 지나다니는 운하쯤이라 해도 가당찮은 일인데 태산만한 컨테이너선을 그야말로 태산을 파내고 다니게끔 만들겠다니, 부산~서울 간을 닷새 걸려 가야하는 그 유용함이 무엇이며 그 비용이 부지기하이며 산천의 결단남이 그 얼마나 끔찍할 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차라리 동해와 서해를 관통시켜서 반도를 우회하는 비용을 줄이겠다면 같은 거짓말이긴 해도 원론적으로 이치에라도 닿는 말은 되겠다. 우리 반도가 아프리카 대륙이나 남미대륙만큼 크다면 또 모르지만.......
살림을 몽땅 털어 넣어 운하만 파고 망하자는 건지 어쩌자는 건지 알쏭하다. 평소 멀쩡하고 똑똑하던 사람도 싱크탱크라며 끌어들여 마취시켜서 큰 배가 지나가면 스크루 회전 덕분에 강물에 산소공급이 원활해져 수질개선이 된다고 속살거리며 엉너리를 대중 앞에 부리게 만들면서 지금 미쳐 날뛰고 있다.
설사 스크루 따위가 눈곱만큼 강물에 산소를 일으킨다 해도 그 큰 배들이 강물에 쏟아내게 될 오물과 기름투성이들이 산소를 더 근원적으로 결단낼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운하의 기능 때문에 강의 담수가 하류에서는 해수로 넘쳐나 강이 제 구실을 할 수 없게 된다. 더러워도 낙동강 하류를 유일한 식수원으로 삼고 목숨을 이어가는 부산·경남 사람들은 섬뜩하여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역대와 같은 거짓말로 상류에 식수원을 마련해 주겠다고 꾐 하겠지만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아나기 전에는 상류에 그만한 식수원이 없다는 걸 우리가 이미 다 알고 있는 터이다.
신형 청계천을 광배(光背)로 삼아 속된말로 한창 뜨고 있는 사람도 교지자임이 드러났으니 심히 경계할 일이다. 교지자로 현재진행형이 또 있으니 지금의 최고 권력자가 아닌가 한다. 충화(衝火)의 용심으로 마구 발망하며 난화기(難畵期)의 호작질처럼 겨끔내기로 세상을 을축갑자로 꼬이게 만들어놓고 좀 재미 보려고 그랬다는 등 뒤변덕을 지기는 이도 교지자 임이 분명하다. 내심을 쉽게 드러내 보인다는 면에서는 순진한 교지자인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역발상 같은 엉뚱한 짓으로 시선을 끌고 반사효과를 노려 재미 보려는 교지자는 고전형(古典型)일지도 모른다. 시거든 떫지나말지 난독잡학(難讀雜學)의 무리들을 긁어모아 거느리고 부정맥처럼 이랬다저랬다 널뛰고 있는 작태는 교지의 바닥이 이미 드러나서 일 것이다. 그러나 기심(機心)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 음흉한 교지자가 오늘 최고의 현자(賢者)로 떠올라서 갑자기 변조(變調)하는 자들과 강종(强從)하는 자들을 끌어 모아 세상 요리할 궁리를 하고 있다면 거듭 말하거니와 심히 경계할 일이다.
불가(佛家)에서는 도를 먼저 깨우친 선지자(先知者)가 수행중인 자들(衲子)을 가르치는 방편으로 탐간영초(探竿影草)라는 말이 있다. 물새의 깃을 엮어서 대(竿)끝에 달아 물속에 넣고 고기를 모아서 한 그물에 잡는 것을 탐간이라 하고 풀을 물에 띄워 그 그늘에 고기가 모여들면 한 그물로 잡는 것을 영초라 한다. 이 경우 선지자는 사심이 따로 없이 납자들이 도를 빨리 깨우치게 하려는 방편으로 그런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므로 혜지(慧知)라 하겠다.
하지만 사리사욕에 눈먼 일부 종교단체들이 신자들을 여러 꾀로 한 그물에 잡아들이려는 수작은 분명 교지일터이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영달과 야망을 위해 갖은 포장술로 민심(民心)을 알겨먹으려는 자도 동질(同質)의 교지자 임이 분명하다.
‘인간은 그가 모든 것을 잃고 나서 비로소 그가 그것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오스카 와일드가 옥중에서 썼다. 산소와 물이 없으면 인간뿐만 아니라 지상의 모든 생물이 목숨을 잃는다. 그런데 산소나 물이 그저 늘 주어지는 것으로 착각하고 예사로 또 함부로 여기고 있다. 예를 들면 산소는 지구라는 별에서 수심 1m 안팎의 저습지에 자라고 있는 수생식물과 땅위의 나무들이 공급하고 있는 것이지 하늘에서 그저 주어지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산소를 갈수록 여러모로 엄청나게 소모하면서 그 공급원은 토목개발 한답시고 송충이 나뭇잎 갉아먹듯 야금야금 메워 없애고 베어내고 있다. 물도 사정이 비슷하기는 마찬가지다. 지금 여기가 중동도 아니고 또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토목에 열광하고 있는가.
세계는 바야흐로 글로벌시대, 정보혁명의 시대, 금융의 시대로 급변하고 있는데 말이다. 사람들이여! 금수강산이 초토화되고 맑던 물 결단나기 전에 부디 정신을 바짝 차리십시다.
●억지에 대하여
가령 탑골공원 따로 있고 파고다공원 따로 있다고 우긴다면 억지인 것이다. 국어사전에는「무리하게 자기 생각이나 행동을 관철해보려는 고집」을 억지라고 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방송언어는 아나운서든 리포터든 한결같이 불끄러가는 다급한 소리로 정형화되어 있다. 한 옥타브쯤 높게 패악을 치듯이 강변조로 눈을 부릅뜨고 열변한다. 마치 무슨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만 같다. 이러이러하니 알았느냐! 그러니 믿어라!는 식이다. 일상적으로 소리를 나지막이 듣는 사람은 청각이 늘 긴장하고 다듬어져서 늙도록 귀가 어둡질 않는다고 한다. 이어폰을 귀에 꽂아 크게 듣거나 소리를 높여 편하게만 듣게 되면 청각이 게을러져 퇴화하고 나이들면 가는귀가 멀고 보청기 신세를 져야 한단다. 우리나라는 공중방송 덕분에, 나아가서 수십 개의 케이블 TV광고 덕분에 많은 국민들이 노후에 보청기 신세를 면하기 어렵게 되어있다.
방송은 성장기의 어린이도 쉽게 보고 배우게 되는 시청각 매체인데 그 목청뿐만 아니라 발음도 예사로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특정 프로에는 진행자나 출연자의 사투리가 난무할 수 있고 그것이 재미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표준어(서울·경기지방 말씨)를 써야하는 것이 기본인 것이다. 신문에서 바른 문법으로 오자 없이 기사나 문장을 써내야하는 이치나 같다. 표준말이 잘 안되면 각고해서 엇비슷이라도 된 다음에 나서야지 지나 깨나 되지도 않은 표준말 흉내나 내면서 냅떠고 나서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면 철자법 틀린 글을 마구 찍어내는 신문이나 같은 꼴이 되는 것이다.
수년전부터 특정지역 출신들이 거의 방송․연예․오락 분야를 장악하다시피 해서 그런지 표준말 혁명이 급속도로 이루어져 가고 있다. 억양이 예사로 뒤바뀐 야릇한 표준말이 판을 친다. 이제는 아예 사투리 억양을 대놓고 섞어가면서 더욱 해괴한 표준말(서울말)들을 구사하려 들기까지 한다. 이런 언어공해를 자라는 아이들이 그대로 배워서 혀가 굳게 되면 영영 고치기가 어렵다. 어릴 때 외국어 조기유학 시키려는 까닭도 쉽게 습득하기 때문이다.
억양이 뒤바뀐 잘못된 표준말이 언어사에 얼마만한 해악을 끼칠 것인가를 이제는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예를 들어 보자. 국영방송 TV광고에 유명 탤런트가 나와서 휴대전화국 선전을 하는데 ‘빨리 가입하세요’ 라며 「입」에 액센트를 주고 강조하고 있었다.「가」에 액센트가 가야 ‘가입’(加入)이 되는데 「입」에 액센트가 놓이면 ‘가입’(仮入)이 되는 것이다. 가짜로 얼른 들어와 달라는 것이 되고 만다. 개발지역(開發地域)도 「발」에 액센트가 놓이면「개의 발」이 되니 개의 발들이 많이 설쳐대는 일대라는 뜻이 되고 만다. 아나운서라는 최고 전문가마저 ‘개의 발’을 예사로 구사하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가 살고 있는 부산의 경우 지하철 안내방송도 예외는 아니어서 교대(敎大)앞이「교」에 액센트가 가서 ‘교활한 자들이 다니는 대학’ 교대(狡大)앞이 되고, 시청(市廳)이 「시」에 액센트가 놓여 ‘시계가 있는 큰 마루방’(時廳)같이 된다. 해운대도 「해」에 액센트를 두고 발음 하니까 ‘해(太陽)가 울어 버린 적이 있는 곳’이 된다. TV의 일기예보하는 보도자도 예쁘고 날씬하면 되지 발음 따위는 따지지도 않고 선임하는 모양이다. 잘나가다가 이상한 발음을 마음 놓고 하고 있다. 남부(南部)지방 어쩌고 할 때 「부」에 액센트가 가는 발성이 예사로 되어 있다. 속칭 떠들썩한 이벤트 행사장이나 길거리의 광고방송도 천편일률적으로 이런 투의 서울말을, 그것도 목청껏 재빠르게 해대기 때문에 영 알아듣기 힘이 든다. 우리말은 아주 쉬운듯하면서도 깊숙이 우러나오는 감치는 맛이 유별나다. 뜻도 오묘하다. 가령 「요요하다」고 할 때 요요(夭夭)는 젊고 아름다움, 요요(搖搖)는 아득히 멈, 요요(寥寥)는 적막하고 쓸쓸함, 요요(嶢嶢)는 산이높음, 요요(燿燿)는 반짝반짝 빛남으로 각기 다르고 억양도 틀린다. 그런데 겁도 없이 나오는 대로 발음을 하고 나서서야 되겠는가.
가끔은 어쩌다 진짜 서울 말씨를 만나게 되면 귀안이 오랜만에 청량한 솔바람 스친 듯 시원해짐은 어인 까닭인가?
언어의 질도 질이려니와 자발머리없는 언행, 말초적 작란(作亂)끼, 안하무인으로 거들먹거림, 똥마려운 강아지 쏘다니듯 설쳐대는 꼴들을 날마다 아이들이 보고 배우고 있으니 난리가 이만저만이 아닌데도 모두가 눈을 감고 있다. 목후이관(沐猴而冠)이라고 잘 입고 잘 바르고 꼴은 매우 갖추었으나 사람답지 않은 자들이 너무 으스대고 거들거리고 전파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권력 앞에는 용비어천가를 부르고 국민 앞에는 억지춘향 지기는 방송 권력의 피폐를 바로잡을 유일한 길은 방송을 아예 안보는데 있다. 방송 안봐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 더 맑은 머리로, 더 화기롭게,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심장병이 국민병으로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미국에서 최근 조사결과 심장병의 3대 원인이 ①유전 ②식생활 ③장시간 TV시청임이 판명되었다.
운동도 않고 편안히 앉아서 재미있는 그림 보면서 군것질만 하니까 그렇단다. 사람은 머리를 부지런히 쓰고 몸을 자주 움직여야 제 건강을 유지하게끔 되어있는 동물인데도 말이다.
표준말이 아닌데도 표준말이라 우기며 뻔뻔스럽게 냅떠서는 대세 때문인지 길거리에 차를 몰고 나서도 뒤쪽에서 달려와서 가로 앞질러가기는 보통이고, 억지로 밀치고 끼어들기는 예사이고, 잘못해 놓고도 되레 눈을 부라리며 행패부리기 일쑤이니 이 모든 작태가 억지 부리기만 하면 통한다는 세태 때문이 아닌가 한다. 클 때부터 억지 부리기만 하면 하나자식 오냐오냐 해왔으니 사필귀정 아니겠는가. 그러니 제 뜻대로 안되기만 하면 불령자(不逞者)가 되어 거리를 누비고 다닌다. 천하의 오잡것들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눈치코치도 없이 길거리에서, 지붕아래서, 들판에서 날뛰는 세상이다.
옛날 제(齊)나라의 재상 관중(管仲)은 ‘백성은 창고가 차야만 예절을 알며, 의식이 족해야 영욕(榮辱)을 안다. 위에 있는 자가 절도를 지키면 육친(父母兄弟姉妹)이 굳게 결합되고, 사유(四維-예의염치)가 흔들려 풀어지면 나라가 망한다’ 했다. 사회기강이 무너지면 곧 망할 징조라는 것이다.
입살이가 갈수록 어려워가고 기강이 사라지고 앞날에의 기대가 막연하여 이제는 이민을 가거나 이중국적 얻거나 각자도생(各者圖生)하려는 살벌한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올바로 말하거나 처신하면 반편(半偏)취급 당하고 숨어서 인터넷에 들어가 작패(作悖)해서 시류를 좌우하는 자 기승을 부리고 전자(電子)나 디지털이 인간을 대신하여 세상을 주도하고 사문난적(斯文亂敵)의 무리가 활개를 쳐서 세상이 창상지변(滄桑之變)보다 급변하고 있어도 어쩔 것인가? 그 속에서 버티고 살아야지 않겠는가.
행적의 면면을 보면 협잡배에 지나지 않은데 기백도 능력도 안목도 없으면서 그저 혁세(革世)한다며 역사를 바로 세운다는 둥 제2건국을 한다는 둥 설레를 치는 통에 나라는 이울고 계층 간에 골만 깊이 패였다. 그래도 어쩔 것인가? 비비고 살아야지 않겠는가.
가렴주구(苛斂誅求)도 물극즉변(物極則變)이라 했으니 변할 때가 올 것이다. 염리(厭離)도 못하는 것이 끈질긴 인연들 때문이다. 나이가 차니 이제 무상(無常)도 알만하고 무위(無爲)에도 익숙해져 견딜만하다. 이태준(李泰俊)의 술회(述懷)처럼 “그리던 친구를 만났으되 그 친구가 도리어 귀찮음도 인생의 외로움”인 줄도 이미 터득하게 되었으니 세상사를 너무 슬퍼하다가 이효상효(以孝傷孝)의 꼴이 나게 되는 법은 없을 터이므로!
신록이 영롱하다. 산 빛이 달라진다. 세상은 아직 아름다운 곳이다.
<2007.6.1>
※ 以孝傷孝: 효자가 죽은 부모를 너무 슬퍼하다가 병이 나서 죽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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