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분위기  
낙동강보존회가 출범한 해인 1978년은, 연초부터 지역언론들이 낙동강하구둑 건설 필요성을 역설하며 조기착공을 촉구하기 시작한 데다, 정부에서도 하구둑 건설을 포함한 낙동강 개발사업계획을 공표하는 등 사회 분위기는 하구둑 건설을 기정 사실화하는 쪽으로 급격히 선회하고 있었다.

정부가 이 해에 들어와 낙동강 하구둑 건설 등 각종 개발사업계획을 잇따라 발표한데는 당시 주력 외화 공급원이던 중동지역의 경기퇴조가 배경이 되었다.

이러한 중동 건설경기 파장을 어느 정도 소화할 수 있는 국내 프로젝트로서 정부가 착안한 것이 바로 낙동강하구둑 건설을 포함한 낙동강 하류지역 개발계획 일 수 있었다.

정부는 1974년에 낙동강 하류지역 개발에 대한 타당성 조사에 착수해 77년에는 이미 조사를 마친 상태였다.

여러가지 주변 상황변화는 그렇지 않아도 하구지역에서 기형어가 발견되기 시작하는 등 낙동강의 수질오염이 가속화 되고 있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던 시민들에게는 더욱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1978년 2월 하구둑 조기건설을 촉구하는 언론보도가 나온 뒤부터 낙동강 개발 문제를 남의 집 불구경하듯 모든 것을 정부에 맡겨 놓아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언론계 인사들 사이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낙동강 개발과 관련한 갖가지 소문이 분분해지면서 뜻있는 시민들 사이에서는 서둘러 낙동강을 보존하기 위한 단체를 구성해서 체계적인 보호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오고, 이어 구체적인 행동으로 급속히 연결되었다.
............................................................................................................................
 
순수 민간인들의 순수한 모임
단체 구성을 위한 행동으로써, 첫 공식 모임이 1978년 4월에 열렸는데 일단 낙동강을 지켜야 한다는데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 모여 회합을 가졌다.

이날 회합에서 참석자 전원은 낙동강이 영남인의 젖줄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특히 시민의 식수원인 낙동강의 수질이 현재 상태보다 더 나빠진다면 식수로서 사용할 수 없는 만큼, 낙동강의 수질 보전을 위해서는 더 이상 무계획한 개발을 좌시해서는 안되며, 시민들이 나서서 낙동강에 대한 무분별한 개발을 감시해야 한다고 합의했다.

이 합의를 실천에 옮기려면 반드시 단체가 필요하며, 올바른 감시를 위해 순전히 민간인들만으로 구성된 단체를 창립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후 몇번의 모임을 통해 단체 이름을 가칭 '낙동강보존회'로 할 것을 결정하고 보존회 창립을 위한 발빠른 움직임을 벌여나갔다.
 
 
 
 
- Copyright ⓒ 1978 ~ 2002 낙동강보존회. All rights reserved. -